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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
08
19:20:40
치위생사
에머슨 : 그대에게 위대하고 선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한 두 번 불러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고난 없이 쉽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소리 없이 사랑방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신의 길은 --가시밭 길이 며 험준한 길이라고 폴피리는 말했다.
2023.04
08
18:50:46
하회탈
익명 : 종교적인 교화(敎化)는 교육의 기초이다.
2023.04
08
18:41:02
아코디언
익명 : 자신 안에 있는, 그리고 모든 사람안에 똑같이 존재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곧 신을 사랑함을 의미한다.
2023.04
08
18:30:56
터치다운
칸트 : 삶에 매우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었던 사람은 무엇보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것이다.
2023.04
08
17:30:16
아이아이엘
익명 : 인간 생활에 시달리면서 현세적인 목적 때문에 사는 자는 평안이 없다. 또 고독하게 정신적인 목적을 위하여 살고 있는 자에게도 편안함이 없다. 인간들 속에 시달리면서 신에게 봉사하며 사는 자만이 편안함 을 얻는다.
2023.04
08
16:50:53
소요학파
헨리 죠지 : 인간의 가장 발달된 분야의 힘이 전쟁과 전쟁에 대한 준비에 소모되고 있다는 것 -- 이 때문에 우리들은 다음 두 가지 위대한 짐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는 간접세이고 그 다음은 국제 차관이다.
2023.04
08
16:40:56
흙차
익명 : 자기에 대하여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하지 말라, 비록 좋게 말해도 남이 믿지 않을 것이며 나쁘게 말하면 그대가 나쁘게 말하는 것보다 더욱 나쁘게 생각할 것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2023.04
08
16:20:06
구약나물
익명 : 유대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죄악으로 생각하고 있다. 신의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금하는 사상의 근거는 깊고 진실하다. 정신적인 것에 이름이 없는 것과 같이 신은 이름이 있을 수 없다. 이름이란 오로지 물질적인 것이고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신은 정신이다. 어떤 이름에 의하여 정의 될 수는 없다. 신의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진정 모독이다.
2023.04
08
13:40:27
감각파
익명 : 인간의 두뇌는 너무 일찍기 배운다든지 너무 많이 배우기 보다는 아 예 배우지 않는 편이 도리어 해로움이 적다.
2023.04
08
11:50:50
동차
익명 : 인생을 악하게 살아가는 주된 원인은 거짓 신앙이다.
2023.04
08
10:20:28
밀수업자
익명 : 자신의 힘을 알려고 노력하라. 자신의 힘을 알고 또 그것을 적게 평가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 과장하여 평가하는 것을 두려워하라.
2023.04
08
10:10:06
송하동
익명 : 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단순한 것이다.
2023.04
08
09:10:49
아토니
불경 : 험한 길을 걸어가면서 과연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의심하는 자는 도덕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 성질을 의심하는 자와 같다. 걷는 길을 의심하면 그는 벌써 그 길을 갈 수 없는 것이다. 현실 생활에는 여러 가지 의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앞길에 절벽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처럼 도덕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2023.04
08
08:30:22
책가
공자 : 설령 사람들이 선이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에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2023.04
08
08:20:25
사자
노자 : 덕성이 깊은 사람들은 자기가 덕이 높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덕한 것이다. 부덕한 자들은 항상 덕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덕을 갖지 못한다. 덕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과신(過信)하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부덕한 사람들은 과신에 빠지고 자기를 항상 내세우는 것이다. 아주 선량한 사람은 실제로 착한 일을 하지만 그것을 나타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량한 자는 자기 만을 확대하고 그것을 나타내려고 힘쓴다. 정의심이 큰 사람은 실제 로 행동한다. 그러나 그것을 선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에 정의심이 적은 자는 행동하면 곧 그것을 자랑하려고 애쓴다. 뛰어나게 예모가 있는 사람은 행동을 하고도 뽐내려 하지 않는다. 예모도 없이 무례한 자는 자기가 행동해도 누가 응해주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자기의 법칙을 강요한다. 이와 같은 높은 덕성을 의식하지 않을때 자연스럽게 선량함이 나타 난다. 그리고 예모가 잃어졌을때 정의가 나타난다. 예의 법칙은 그저 정의의 모방이다. 그리고 모든 무질서의 시초이다. 그러므로 성자는 꽃이 아니라 열매를 소중하게 여긴다. 최후의 것을 버리고 최초의 것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