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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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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
18
16:31:00 고어지사
헨리 조지 : 전쟁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정욕, 각 국민간의 증오, 戰勝(전승)에 대한 숭배, 승리 또는 복수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양심을 짓밟고 고귀한 협동 본능을 저속한 맹목적 자아애(自我愛)로 바꾼다. 이 자아애에는 애국주의라고 그릇되게 일컬어진다. 그것은 또 자유에 대한 사랑을 소멸시키고 남을 헤치겠다는 야만적인 소원 때문에, 또는 자기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공포 때문에 전제주의자나 정권 쟁탈자에게 굴복하도록 유도한다. 또 그와 같은 것들은 종교적인 감정의 본질을 변질시키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지키는 자들까지도 살인과 약탈을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 하고 영주들에게 전승에 대한 감사를 돌리게 한다. 영주들을 위하여 지상에서는 참혹한 시체가 가득하고 죄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슬픔 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2022.12
18
16:28:11 단사점렬문
공자 : 설령 사람들이 선이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에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2022.12
18
13:57:14 붕산소다
아우렐리우 : 우리들의 의지력에 의해 평온한 정신 상태로 돌아가기에 힘쓰는 일 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신의 편안을 가질수 있는 능력을 더해지는 것 이다.
2022.12
18
13:10:55 메타인산
익명 : 신앙이 없이도 정신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2022.12
18
12:57:12 바이오트론
세네카 :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만다. 바람 때문에 성난 파도가 해초를 뿌리째 뽑아 버림은 누구나 알고 있다. 바다와 같이 마음에 폭풍이 생겼을 때 분노는 상스럽고 험상궂고 사악한 말을 뿜어낸다. 인간의 입이란 그러한 말로 가득 차 있고 더럽 혀져 있는 채 어느 때라도 뿜어낼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 분노가 닥쳐 왔을 때에는 냉정을 되찾아야 하고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분노란 결코 고상한 것도 남성적인 것도 아니다. 분노 속에는 고상한 감정이나 위대한 감정이 없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무지한 인간들은 그와 같은 광태를 적극성으로, 공감을 용기로, 불순함을 힘으로, 잔인함을 힘의 기회로, 경솔함을 굳셈으로, 심술을 악에 대한 혐오라고 잘못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실은 바대로 분노하고 있는 사람의 행동은 모두 그 사람의 악함과 어리석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분노해서 자기 의 아이나 부인을 때리거나 행패를 부리는 경우와 개나 말을 차고 때리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심하게 때리 면 몸이 붓는 것과 같이 약한 마음이 남에게 상처를 받으면 점점 약 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강한 분노를 나타낸다. 여자는 남자보다 화내기 쉽고 병든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 분노하기 쉬운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분노는 강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반대로 약한 마음의 표현이다. 약한 마음은 힘자라는 대로 경련 하면서 스스 로의 고집을 버릴 수 없을 뿐더러 흙탕물을 내뿜는 폭풍우의 바다와도 같 이 자기 자신을 암흑으로 그리고 더럽게 하는 것이다.
2022.12
18
12:21:51 차과
익명 : 인간은 자기 부정을 가지면 가질수록 사람들에게 더욱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아(自我)는 신을 가리고 있는 장막이다.
2022.12
18
11:45:52 나무타기쥐
아우렐리우 : 인간의 마음은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엇에 강요되며 진리나, 절제나, 정의나, 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 때 남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다.
2022.12
18
11:05:05 단풍나뭇과
고골리 : 기독교는 젊은이들과 같이 인생에 있어서 싸움을 피할 수 없다. 기독교도에게는 항상 싸워야 할 것과 전진해야 할 것이 있다. 왜냐하 면 늘 맑고 밝고 환한 자아 반성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새로운 결점 을 폭로해 버린다. 그리고 그 결점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도의 모든 힘은 잠자거나 쇠퇴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하나 눈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착하고 싶다는 갈망을 제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할 줄 모르는 야심가에게는 주어질 수 없는 용기를 기독교도에게 준다. 다른 사람들은 퇴화해 가는데 왜 기독교 도는 진화해 가는가? 그리고 기독교도 들은 앞으로 전진함에 따라 왜 점점 깊은 지식을 얻는가? 하는 것에 대한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22.12
18
10:47:50 구약나물
웨타니 : "나는 겸손합니다"라고 스스로 말하는 자는 결코 겸손하지 못하다.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라고 하는 자는 잘 알고 있는 자이다. "나는 무엇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자는 허풍을 떠는 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가 가장 현명하고 착한 자이다
2022.12
18
09:40:56 회의론자
익명 : 우리들이 한 공동체가 되어 그 속에 살고 있으면, 또 우리들 각자가 그 속에 살고 있는 무서운 거짓을 뚜렷이 알려고 하면 솔직하고 단순하게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2022.12
18
08:07:01 치위생사
익명 : 신에 대한 사랑은 완성에 대한 사랑이다. 완성에 대한 사랑은 완성 에 대한 노력이라고 불러도 좋다. 완성에 대한 노력이 인생의 본질 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활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랑이다.
2022.12
18
07:40:10 송하동
존 러스킨 : 그 어느 편도 위험한 두 개의 미신을 경계함이 필요하다. 그 하나는 신 의 본질을 말로써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신의 능력을 과학적 해명에 의하여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의 미신이다.
2022.12
18
06:53:07 나무람
익명 : 사람은 사람을 돕는다는 말이 있다.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도움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들의 생활은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저 남의 도움을 이용할 따름이다. 이런 자는 인생을 파괴하는 것이다.
2022.12
18
05:55:17 다지니천
불경 : 험한 길을 걸어가면서 과연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의심하는 자는 도덕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 성질을 의심하는 자와 같다. 걷는 길을 의심하면 그는 벌써 그 길을 갈 수 없는 것이다. 현실 생활에는 여러 가지 의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앞길에 절벽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처럼 도덕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2022.12
18
02:48:29 수론파
익명 : 부자의 만족은 가난한 자의 눈물 속에서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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